작년 신고건수 4515건…법 시행 이후 5~10배 증가
지난해 10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시행된 이후 피해 신고 사례가 급증하고 최근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명령까지 받아낸 스토킹 피해자가 보복범죄로 살해되는 등 강력사건마저 발생하고 있지만 피해자 보호조치가 여전히 미비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실무에서 검·경 간 책임 미루기가 발생하는 탓에 법원의 접근금지명령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삐걱이는 검·경 협력…대검 “피해자 신변보호에 만전” = 18일 시행 120일을 맞은 스토킹처벌법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동거인·가족 등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일련의 행위를 하는 것’을 스토킹 행위라고 법률로 처음 명시했다.
가해자 구속영장 청구 놓고
검·경 협조 ‘엇박자’
2020년 경찰에 접수된 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는 4515건이었다. 법 시행 이후 전국 경찰서에는 전년 대비 5~10배가량 신고 건수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경찰의 신청에 따라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명령을 받은 남성이 이를 어기고 피해 여성을 계속 스토킹하거나, 신변보호 대상자인 피해 여성이 보복범죄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잇따랐다. 특히 지난 14일 서울 구로구 한 술집에서는 40대 중국국적 여성 김모씨가 숨진 채 발견됐는데, 전 남자친구 조모씨로부터 폭행 및 특수협박 피해를 당해 서울 양천경찰서가 범죄피해자 안전조치 대상자로 등록했던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 당시 김씨는 스마트워치를 통해 경찰에 긴급신고를 했지만 변을 당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12일 검찰에 조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신청했지만 검찰은 범죄소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스토킹 범죄 피해자 안전 조치의 실효성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안을 검·경이 조속하게 강구하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대검찰청(검찰총장 김오수)은 같은 날 스토킹·성폭력·보복범죄 등 강력사건에서 사건 발생 초기부터 경찰과 긴밀히 협력하되, 재범 및 위해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는 영장 검토 시부터 가해자 접근 차단을 포함한 실질적 피해자 보호조치를 시행하라고 전국 검찰청에 긴급 지시했다.
◇ “적시 대응” vs “사법 통제” = 법조계에서는 출동 현장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경찰의 임시조치 권한을 강화하되, 이에 대한 사후검증과 법원이 결정하는 피해자 보호조치 범위를 강화하는 추가 입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경찰의 신청에 따라 검찰이 법원에 청구하는 긴급응급조치(접근금지명령·전기통신이용 접근금지명령)와 잠정조치(서면경고·100m 이내 접근금지·문자금지·최대 한달간 유치장 유치)에 대해서는 경찰이 필요 시 법원에 바로 청구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는지를 두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한 변호사는 “긴급응급조치 위반에 대해 과태료만 부과하는 것은 너무 약한 처벌”이라며 “경찰의 1차 현장판단을 존중하되, 긴급 또는 응급조치를 취하는 요건인 위험성을 사후에 검증하는 자문기구 설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접근금지명령 위반
지속적 확인도 어려워
한 로스쿨 교수는 “현행법이 범죄를 충분히 예방하지 못하고 있다”며 “치안을 관장하는 경찰에게 더 많은 주도권을 주고 적시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스토킹 피해자 보호나 범죄예방 목적으로는 경찰이 적시에 직접 법원에 관련 청구를 할 수 있도록 점차 문을 열어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면 또다른 변호사는 “경찰이 스토킹 피해 방지를 이유로 직접 영장청구권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는데, 사법통제를 위해서는 검사의 검토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 출동현장서
피해·가해자 분리 임시권한 강화
다른 로스쿨 교수도 “우리나라 형사법 체계는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 및 범죄예방을 연계하는 경향이 있는데, 스토킹 등 특정 범죄에 대해서는 분리될 필요가 있다”며 “법원과 검찰을 통한 사법통제를 강화하되, 피해자가 보호를 요청하면 즉시 보호 받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스토킹은 한 사람에 대한 왜곡된 맹목적 사랑이라는 범죄 특성이 있다”며 “국가 공권력의 역할이 범죄 특성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범죄 특성을 고려하면 과태료를 벌금으로 바꾸는 등 형벌을 상향하는 조치는 실효적이기 어렵고, 현행법상 가능한 100m 접근금지 금지명령이나 문자 금지도 위반 여부를 지속적으로 확인할 뚜렷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에는 스토킹처벌법 입법 이후 10개의 개정안이 발의돼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피해 확대를 예방하기 위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을 포함하면 관련 개정안은 더 많다. 주로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는 방안 △법원의 명령에 따른 피해자보호명령과 신변안전조치를 강화하는 방안 △미성년자에 대한 스토킹범죄를 가중처벌하는 방안 △긴급응급조치를 위반한 경우 현행 과태료에서 1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다.
사후 검증·피해자 보호조치 강화
추가입법 필요
◇ “무용지물 접근금지명령”… 미국식 GPS 부착명령 주장도 = 잠정조치를 위반한 사람을 제재하기 위해 법원이 가해자에게 위치추적장치(GPS) 부착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추적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최근 발표한 ‘가정폭력 접근금지명령 이행 강화 방안-가해자 GPS 추적제도 도입을 위한 시론’ 보고서에서 “최근 우리나라에서 잇따르는 스토킹·가정폭력 관련 살인사건에서 법원이 가해자에게 내린 접근금지명령이 피해자 보호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고, 결별 과정에서 스토킹 피해 정황도 포착된다”며 “가해자의 위험을 평가해서 피해자 안전에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보호명령 내용이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접근금지명령과 함께 (법원이) 가해자 위치추적 명령을 동시에 결정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며 “다만 장기적으로 전문성을 갖춘 수사기관의 위험도 평가가 선행돼야 하고, 단기적으로는 접근금지명령 위반에 대한 제재 규정에 가해자 관리제도를 추가해 피해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해자에
위치추적 장치 부착명령 도입 주장도
허 조사관은 이 같은 제도가 활성화된 미국의 사례를 소개했다. 지난 1월말 기준으로 미국 50개 주(州) 가운데 워싱턴·캘리포니아·플로리다 등 23개 주정부는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법원이 GPS부착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며, 10개 주에서는 입법절차가 진행 중이다.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미국에서는 가해자에게 법원이 접근명령금지 명령을 내리면서 GPS 부착명령을 함께 내리는 경우가 많다. 접근금지명령을 위반한 사람에게 징역형 대신 GPS 감시를 선택하게 하거나, 보석이나 공판 전 석방조건으로 장치 부착을 명령하는 주도 있다. 관련 비용도 가해자가 부담해야 한다. 미국에서 가정폭력은 법률혼과 사실혼 뿐만 아니라 연인과 헤어진 연인이 피해자인 경우도 포함하기 때문에, 한국의 데이트 폭력이나 상당수 스토킹 범죄도 이에 해당한다.
허 조사관은 “미국에서는 2001~2012년 여성 1만1766명이 배우자 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같은 기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순직한 미군 수가 6488명이었다”며 “친밀성에서 참혹한 피해가 발생하는 스토킹 범죄의 특수성과 위험성을 고려하면, 접근금지명령이 얼마나 잘 준수되는지가 피해자 보호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립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도입할 경우) GPS 장치는 피해자에게 접근금지 진입 사실을 즉시 알릴 수 있어야 하고, 법원이 피해자에게 긴급하게 연락할 수 있는 긴급전화를 제공해야 한다”며 “법원이 주기적인 모니터링 결과를 충실히 살펴 GPS감시를 지속할 것인지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출처 : 인터넷 법률신문 La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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